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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을 접했을 때 ‘계통’을 세우거나 ‘궤적‘을 그려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역사학도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었다.

그런 나에게 ‘롤모델‘이 있었다면 ‘국화와 칼‘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다.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일은 없다는 베네딕트는, 그러나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국화와 칼‘을 세상에 남겼다. 그리고 실상 그런 저술은 가능하다. 많은 연구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가끔은 먼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는 법이다.

루스 베네딕트를 동경했던 사람으로서라면 어이없는 결착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뭐랄까 ‘아이돌’ 전문인 느낌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정말 쟈니즈 계가 아닌가요?‘하는 질문은 이제 너무 들어서 식상할 정도다. 그러나 이제와서 쟈니즈나 SM 얘기를 좀 하려고 해도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하는 지경임을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도 꼭 잘못 된 시각은 아니겠구나 싶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외부‘에서 나에게로 ‘접속‘한 것일테니까.


예전에 ‘한류’ 포스팅을 하고서, 그 포스팅의 내용이 비교적 일본의 현실에 충실히 접근되어있으며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일본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쟈니즈계는 아니지만 쟈니즈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정 가수의 팬이 되었던 적이 없는데도 항상 음악방송을 체크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시작한 일‘이라면 ‘정리‘하고 싶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이 ‘그럴 듯 해보이는 것의 총합‘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역사에 접근하고 있다. (때로는 나의 역사관이 지나치게 자조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는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시각 역시 ‘멀리서’ 바라볼 때 오히려 중립적일 것이라 믿는다)


12월 1일 포스팅한 ‘성대현 vs 이성욱 / 그리고 R.ef..’ 시리즈?에 대해서도 그렇다. 뭐 그리 대단한 얘기라고 1편2편으로 나누어서 언급했지만, 정작 나는 그들이 함께 등장했다던 ‘절친노트‘는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제 IPTV로 확인. 그리고 그간 내가 짐작해 온 바가 아주 틀린 내용은 아니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때로는 단지 ‘사고체계‘를 통해서 ‘진실‘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은, ‘攻殻機動隊(이하 공각기동대)‘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워쇼스키 형제가 동경해마지 않았던 이 매혹적 세계관은, ‘블레이드 러너’ 이후로 헐리우드의 ‘아류‘신세를 자처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거둔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기도 한다. 원작 발간년도는 물론 애니메이션의 초판 제작년도조차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매끈한 만듦새와 혁신적인 설정은 아직까지도 공각기동대로 하여금 사이버펑크 계의 주류적 위치를 틀어쥐고 있을 수 있도록 했다.

공각기동대. '네트'의 시각화

공각기동대. ‘네트‘를 시각화한 장면.
‘어떤 네트’ 안에서 일하고 있는 타치코마의 ‘존재’
출처 http://talkstorm.com/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어떤 네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영상이다. 이 모호한 장면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틈을 남겨두었다. ‘어떤 네트‘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웹‘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공간‘을, 공각기동대는 세련되게 시각화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본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웹‘이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또한 ‘사이버‘적일 이유도 없다.

어딘가에 반드시 ‘접속‘하고 싶어하는 본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언에 맞닿아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접속이 확인되는 순간, 존재는 인정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접속 시도‘로 존재를 인식하려 하는 것이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의 시대가 조금 더 ‘인간미’ 있었다고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옛날이어서? 기술이 구식이어서? 아니, 그 ‘인간미‘의 기저에는 ‘접속 시도‘를 인식할 ‘시간‘이 강제되었음이 읽힌다.

무의식중에 스스로가 ‘접속 시도‘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인간은 최후의 ‘인간미‘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초고속 인터넷의 시대가 오고, 그 ‘접속 시도‘가 무의식적인 ‘찰나‘에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사람은 자신이 가진 최후의 ‘인간미‘를 확인할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곁가지 치기는 나의 진정한 전공일지도 모른다..) 이 ‘접속‘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동아시아는 오래토록 ‘도교적 전통’을 공유해왔다. 모든 사람의 내부에 ‘소우주‘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소우주‘라는 단어의 21세기 버젼이 ‘네트‘라면 어떨까? 모든 사람은 ‘내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내부’ 네트워크들은 서로 ‘접속‘된다. ‘접속‘이 성공하는 것과 동시에 이것은 ‘거대 네트워크‘로 이전해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분자화되고 미세화되는 현대사회에는, 단순히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새로운 개념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결국은 ‘내부 네트워크‘는 ‘거대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하게 ‘개념‘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사고 체계‘로 불리게 될 것이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성장과 이전이 ‘실체‘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하이테크놀로지‘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블로그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이제 이 ‘위대한 1인 미디어‘는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목터지게) 이야기해왔듯, 블로그란 하나의 ‘툴‘일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을 찾았을 뿐이지, 이것이 ‘신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제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영역‘을 굳이 찾으려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웹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영역‘을 운운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철저하게 개념적이기만 한 상태의’ 네트는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네티즌‘이나 ‘블로거‘들이 ‘실체적’ 네트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블로깅 툴은 ‘하이테크놀로지‘로 보였다. 한때는 웹2.0 어쩌구 하는 것이 나왔고 ‘하이테크놀로지‘인 척 굴었다. 글쎄. 그냥 다 ‘도구‘일 뿐이다.

이제서야 서서히, 우리는 깨달아가고 있다.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적인’ 네트라는 공간에. 이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 추상화조차 어려울 우리를 위해, 어떤 선각자들은 ‘매끈한 시각화(공각기동대)‘를 마쳐두었다.


결국 모든 사람의 네트는 진실에 닿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경로‘가 너무나 다각화되어서, 진실에 접근한 사람조차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믿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길을 걷고 있음을..


당신의 네트워크는 ‘이미’ 진실에 닿아있다.

2008/12/02 12:25 2008/12/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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